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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 운동 및 사회중의 운동을 전개한 독립유공자 김철수에 관한 소논문

저작시기 2017.03 |등록일 2017.05.24 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민족해방운동에 기여했던 김철수의 일대기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항일투쟁기 김철수의 활동
3. 해방이후 김철수의 활동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지운(遲耘) 김철수(金錣洙)는 항일투쟁기 고려공산당의 상해파, 서울파와 상해파 연합인 조선공산당 ‘서상파’의 지도자였지만 각각의 정파가 가진 파벌을 극복하고 통일전선이라는 일관된 운동 노선을 견지했다.
이는 1925년 화요파가 주도했던 1차 조선공산당에 결합한 후 김철수가 지향한 노선과 1927년 ML파가 주도한 통합조선공산당 창립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해방 이후에도 동일한 원칙으로 조선공산당의 공개 당 원칙을 주장하고 민족주의 진영과 연대를 모색했다.
김철수가 속했던 고려공산당 상해파와 조선공산당 서상파는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서 한국식 혁명전통과 국내 기반을 중요시했던 조직이었다. 박헌영을 비롯한 경성콤그룹이 국제공산당의 국제노선을 중시했던 것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파벌과 분열을 넘어 연대를 모색하고 공개적이며 대중적인 조직 활동을 주장했던 김철수의 원칙이 항일투쟁기와 해방 정국에서 채택되었다면 우리 현대사는 분단과 냉전을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우리 역사에 기록된 변혁운동 활동가 가운데 내부의 파벌타파와 민족통일을 위한 통일전선에 가장 적극적인 민족혁명가 중 한 사람이었다.
항일투쟁과 민족통일의 길에서 누구 못지않은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남북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민족혁명가였던 그는 일생 민족통일이라는 꿈을 안고 분단된 조국에서 엄혹한 냉전의 세월을 견뎌냈다.
김철수에 대한 연구는 1988년 이균영에 의해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졌다.
1988년 여름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의 지방 조직 연구를 위해 전·남북을 방문했던 이균영은 전북 부안군 백산면에서 김철수의 유고(1970~1973, 친필 작성)와 10개의 육성녹음 테이프(1982~1983, 녹음)를 발견하게 된다.
자료를 검토한 결과 10년의 시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거의 일치함을 확인했고 기존 자료와 교차 대조한 결과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 김철수 연구의 장을 열었다.
이균영의 연구 이후 199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에서는 구술자료와 문서자료를 총망라한 자료집을 발간했다.

참고 자료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1~5, 『청계연구소』, 1986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3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 『범우사』, 1998
임경석,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역사비평사』, 2008
김성동,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박종철출판사』, 2013
최주한·하타노 세츠코, 「이광수 초기 문장집 Ⅱ」, 『소나무』, 2015
「자료 김철수 친필유고」, 『역사비평』 5, 1989
한홍구·이재화, 「韓國民族解放運動史資料叢書」, 『경원문화사』, 1992
강만길·성대경 편,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창작과 비평사』, 199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편, 「지운 김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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